이탈리아 ‘오페라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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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   조회수: 6 날짜: 2025-06-23본문
이탈리아 ‘오페라 종가’ 라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의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 극장장과 지휘자 정명훈 [클래식부산 제공] [헤럴드경제(부산)=고승희 기자] “베르디가 활동하던 150년 전엔 한국이라는 나라를 전혀 몰랐겠지만, 그의 음악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정명훈이라는 보물을 찾게 됐어요. 그는 베르디가 발견한 보석이자 기적 같은 재능입니다.”이탈리아의 ‘오페라 종가’ 라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의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Fortunato Ortombina·65) 극장장은 지난 21일 부산에서 한국 언론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오르톰비나 극장장은 이날 정명훈이 예술감독으로 이끌고 있는 부산콘서트홀 개관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사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오르톰비나 극장장은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을 17년간 이끈 주역이다. 예술감독(2007~2017년)을 거쳐 총감독(2017~2025년)으로 진두지휘하며 정명훈 지휘자와 오랜 인연을 맺었다. 지난 2월 라스칼라 극장으로 취임한 후엔 차기 음악감독으로 정명훈을 이사회에 추천했다.247년 역사상 첫 동양인 음악감독으로 정명훈을 위촉한 배경에 대해 오르톰비나 극장장은 “정명훈 감독은 150년 전 음악도 현대적으로 들리게 하는 능력이 있다”며 “라 스칼라가 미래에 더 열린 극장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정명훈은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와 경합을 벌였으나, 라 스칼라 극장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선임돼 오는 2027년부터 극장을 이끈다.오르톰비나 극장장은 “20~30년 전이라면 (극장의 음악감독이) 이탈리아인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며 “그는 역대 음악 감독을 제외하고 라 스칼라 극장에서 가장 많은 공연(오페라 84회, 콘서트 141회)을 지휘했다. 정명훈은 우리에게 이탈리아인과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정명훈이 전생에 이탈리안이었을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명훈 클래식부산 예술감독이 부산콘서트홀 개관 연주를 앞두고 아시아필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갖고 있다. [클래식부산 제공] 오르톰비나 극장장이 정명훈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1992년 이탈리아에서 여행 가이드를 할 때였다. 미국에서 온 부유한 단체 여행객 중 한 명이 공연을 관람하지 못하게 되자,광복 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 - 18 방치된 현충시설…잊힌 영웅들 ▲ 지난 20일 찾은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 고 유봉석 의병의 묘소로 향하는 길이 따로 마련돼있지 않아 잡풀을 헤치고 가야 한다. 후대와 독립을 위해 스러진 이들이 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곳곳에 추모비가 세워졌지만, 영웅의 존재는 희미해져가고 있다. 많은 현충시설이 무성한 잡초 속에 수년째 방치되고 있어서다. 애써 현충시설을 찾아 나서려고 해도 표지판이 없거나 지도에 제대로 표기돼 있지 않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항일운동 유적지는 행사 때만 반짝 조명된다.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곳도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힌 도내 현충시설과 현충시설로 지정되지 못한 채 수년째 잊힌 영웅의 공간을 찾아 실태를 점검했다. ▲ 춘천 학생 동아리 ‘어색한 사이’ 멤버들 ■ 영웅의 추모비가 잊혀가는 이유 지난 20일 춘천시 서면 후동리 소주고개길 인근. 춘천 항일의병의 대표 인물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충의현비’를 이찬해 광복회 강원도지부 사무국장과 함께 찾았다. ‘충의현비’는 우리나라 항일의병의 대표 인물이자 춘천을 대표하는 의병장인 의암 류인석 선생과 유홍석 의병장, 여성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윤희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다. 1989년 3월 1일 광복회 강원도지부가 항일의병들의 희생과 공적을 잊지 않기 위해 춘천시의 지원을 받아 건립했다. 그러나 비석 곳곳에는 거미줄과 이끼가 끼어있었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비석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영웅을 기리기 위한 공간은 그렇게 수년째 잊히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국가보훈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현충시설이지만, 주변에 이를 알리는 어떠한 표지판도 없었다. 지도에는 위치도 제대로 표시돼있지 않아 전문가와 함께하지 않는 이상 찾기가 어려웠다.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으로서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무슨 이유로 마련됐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추모비에 건립 이유와 공적이 자세히 적혀 있었지만, 대부분이 한자로 쓰여진 탓에 한자를 잘 모르는 일반인이 비석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충의현비 맞은 편에 세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