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현시대의 중년 남성들이 마주한 현실을 조명하는 드라마다. 은퇴 후 '개인'으로 돌아온 중년 남성들이 느끼는 충격과 상실감. 과연 이들은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이야기》)는 제목부터 독특하다. 입에 잘 붙지도 않고, 지나치게 길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런 제목을 붙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김낙수 부장(류승룡)의 상황이 현실을 그대로 압축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해야 오리지널골드몽 한다면, 김부장은 아마 이 제목 그대로 말할 것이다. 그것이 김부장이 살아온 삶의 가치와 위상을 설명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이른바 성공의 기준, 곧 '스펙'으로 평가하는 가치관 속에서 살아간다. 서울 자가 아파트를 보유하고, 대기업에 다녀야 하며, 승진 누락 없이 부장 자리까지 올라야 비로소 성공했다고 여기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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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스틸컷 ⓒJTBC


하지만 25년간 근속하며 회사에 충성을 바친다고 해서, 회사가 그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줄까. 《김부장 이야기》가 보여주듯 그 믿음은 신기루에 가깝다. 결 골드몽 국 쓸모를 다한 김부장은 지방으로 좌천되고, 인력 감축 압박까지 받으면서 스스로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다. 퇴사 후의 삶은 더 냉혹하다. 부동산 사기에 퇴직금마저 날려버린다. 결국 빚과 생계에 허덕이다 대리운전에 세차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결국 집을 내놓는다. 25년 근속 끝에 겨우 손에 모바일야마토 쥔 서울 자가 아파트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대기업이 더 이상 평생직장이 되지 못하고, 임원에 오르지 못한 부장급들은 쫓기듯 회사를 떠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상상도 못 했던 대리운전이나 세차 일을 하게 되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믿어온 '스펙의 삶'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이었는지를.
《김부장 이야기》는 온갖 스펙 골드몽릴게임릴게임 을 수식어처럼 덧붙여야만 자기 존재를 설명할 수 있었던 김부장이, 퇴직 이후 비정한 현실과 마주하면서 모래성 같은 수식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김낙수'라는 개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환상을 벗겨내고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김낙수는 비로소 '편안함'에 이르게 된다.
편안함에 이르고픈 중년들의 몸부림
편안함을 향해 나아가려는 김부장의 여정은 자연스럽게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정희네 술집에 모이는 중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때 은행 부행장이었지만 현재 모텔에 수건을 납품하는 사람, 자동차연구소 소장이었으나 이제는 미꾸라지를 수입하는 사람, 과거에는 영화감독으로 술 먹다 토해도 누군가 받아주었을 사람이지만 이제는 남들이 토해 놓은 자리를 치우는 청소노동자가 된 사람, 제약회사 이사였다가 백수가 된 사람. 그들은 퇴근 후 정희네 술집에 모여 한바탕 술판으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들에게 여전히 회사에 남아 버티고 있는 박동훈(이선균)은 마지막 남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온갖 모욕적인 일을 참아내며 안간힘을 쓰던 그도 결국 퇴사한 뒤에야 편안함에 이른다. 건물이 무너지듯 삶 전체가 무너질 것만 같았던 퇴사가 막상 겪고 나면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역시 이런 중년의 불안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25년간 제지회사에서 전문가로 일해 왔지만, 외국계 회사의 투자로 경영권이 바뀌면서 돌연 해고 통보를 받은 만수(이병헌)가 재취업을 위해 벌이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여기서도 해고 이전의 만수는 교외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에서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하며 "다 이루었다"고 만족해하던 중년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 '다 이룬' 중년의 삶은 해고 한 번으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퇴직이 곧 은퇴로 여겨졌던 삶도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됐다. 자녀가 성장해 부모를 부양하는 삶만큼, 은퇴할 나이에도 여전히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삶도 늘어났다. 취업 난관과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족관이 맞물리면서, 중장년 세대에게 편안한 은퇴는 점점 더 먼 목표가 됐다. KBS 주말드라마 《화려한 날들》에서는 이른바 '마처세대'(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의 가장이 등장한다. 중견 원단회사에서 33년간 근속하고 정년퇴직한 가장은 퇴임 후에도 험난한 재취업 전선에 내몰린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스틸컷 ⓒJTBC


호칭 속에서 드러나는 '중년을 비웃는 사회의 시선'
중년 남성들은 나이 드는 것이 불안하다. 나이 든다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생애 주기가 아니라 불안의 원천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전부라고 여겨온 스펙들이 하나둘씩 공중분해될 위험에 놓인다. 게다가 이들은 그 와중에도 생계를 위해 일을 계속해야 한다. 변화하는 노동시장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진 인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압박도 크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강박으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까.
"요즘은 말이야. 그런 생각 가끔 해. 예전에 내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런 선배들이 있거든. 있어. 그런 사람들. 근데 혹시라도 뭐 그럴 리는 없지만 여러분들이 그 선배들처럼 나를 그 꼰대로 생각하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김낙수 부장이 팀원들을 옥상으로 불러모아 꺼내놓는 이 말에는 자신도 '소통하는 중년'이 되고 싶다는 어색한 흔적이 묻어있다. 하지만 젊은 팀원들에게 이 장면은 영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김부장의 이런 모습은 오늘날 젊은 세대가 '영포티'라고 부르며 바라보는 중년 세대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과 맞닿아 있다.
영포티는 본래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으려 했던 40대를 지칭했던 말이다. 하지만 최근 이 단어는 젊은 감성과 문화를 억지로 흉내 내는 중년을 조롱하는 표현으로도 쓰이고 있다. 영포티라는 말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이 말해 주듯, 우리 사회가 중년을 바라보는 관점은 극단적으로 갈려있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어느새 '아재'라는 좀 더 친숙한 느낌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꼰대'나 심지어 '개저씨'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소비되기도 한다. 이 복잡한 감정과 정서를 담은 시선들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에 투영돼 때로는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 신드롬은 물론이고, 한때 유행했던 '아재 개그', 드라마 《꼰대인턴》에 등장하는 꼰대와 개저씨의 모습들이 그 사례다. 여기에 영포티, 마처세대 등의 표현을 포착해낸 콘텐츠들은 중년 남성들이 처한 현실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땅의 수많은 김부장은 달라진 현실 앞에서 어떻게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과거의 가족주의적이고 성공 중심적인 가치 기준을 어떻게 개인주의적이고 행복 중심적인 가치로 바꿀 것인가. 이것이 김부장들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내놓는 해법들이다. 《나의 아저씨》와 《김부장 이야기》는 모두 회사라는 과거의 가치관에 매달린 중년들이 결국 그 기준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불안을 놓아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기준을 향해 '버틴다'라는 감각이 아니라, 그 기준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자기 행복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버티던 김부장은 그 타이틀을 내려놓고 '김낙수'라는 한 개인으로 돌아간 순간, 비로소 편안한 얼굴이 된다. 그 얼굴 속에 어쩌면 오늘의 중년들이 기대어볼 수 있는 희망이 있지 않을까. 기자 admin@gamemong.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