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이서수 제공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엔 작은 책방이 많다. 그곳을 묵묵히 지키는 책방지기들과 온라인 구매의 편리함을 마다하고 책을 직접 사러 오는 손님들을 볼 때면 늘 반가운 마음이 든다. 독서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여전 릴게임모바일 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실감하는 장소다. 책 표지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옆얼굴과 낱장을 넘기는 신중한 손동작을 볼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순간을 마주한 기분이 든다. 책의 표지 그림을 그리고,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박정은씨를 만나 책과 결부된 노동을 택한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어릴 때부터 책과 그 릴게임사이트추천 림을 좋아했어요. 대학에선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는데, 졸업할 때 진로를 고민하다가 여러 장의 그림으로 영상을 만드는 것보단 한장의 그림에 다 담는 작업이 저에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러스트레이션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특히 책 표지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회사에서 경력을 쌓지 않고 곧바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는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떻게 첫 작업을 맡게 되었을까. “2009년에 홍대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그림을 모아 전시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문학과지성사 디자인팀이 오셔서 제 그림을 조경란 작가님의 소설집 ‘풍선을 샀어’의 표지로 사용하고 싶다고 제안해주셨죠. 그 뒤로 단행본 표지와 내지 및 삽화 중심으로 작업을 했어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릴게임 오로지 색연필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고요. 완성된 걸 스캔해서 후반 작업만 컴퓨터로 하고 있어요.”



박정은씨가 그림 작업을 할 때 쓰는 도구들.


다양한 그림 도구 중 색연필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색연필은 10원야마토게임 건식 재료잖아요. 종이에 그림을 그렸을 때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포슬포슬하고 따듯한 그 느낌이 좋고 제 그림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수작업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색감 같은 게 그대로 인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후반 작업은 컴퓨터로 하지만요. 디자인했을 때 좀 더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여백을 늘려준다거나 색감과 위치를 바꿔야 할 때도 있고요. 잡티는 옛날엔 다 지웠지만 지금은 거의 손을 안 대요.”
일부러 잡티를 없애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수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인간이 그린 선이라는 걸 남겨놓기 위해 비뚤어진 상태로 두기도 하거든요. 비뚤어져도 일부러 수정하지 않는 거죠. 비껴나가고 비뚤어지고 이런 부분에서 창작자의 개성과 매력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에이아이(AI·인공지능)로 만든 그림은 그런 게 없고 완벽하잖아요”라고 답했다. 우리는 에스엔에스(SNS) 프로필이 지브리 스타일의 그림으로 도배가 됐던 시기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에게 에이아이가 직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아이로 인해 그림 작가들이 일자리를 잃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됐을 때, 우리들은 더 많은 걸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만들어놓은 세계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에이아이가 학습할 원천조차 다 사라지는 거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에이아이로 책 표지를 만들었던 출판사가 있었어요.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에이아이에 학습시킨 다음 표지를 뽑았다가, 그걸 알아챈 작가들이 항의해서 내린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에이아이로 그려진 그림에 감탄하고 그걸 이용하는 상황이 저는 좀 불안하고, 이게 맞을까, 그런 의문이 들어요. 실제로 그림 작가들은 영향을 크게 받고 있거든요. 일할 수 있는 자리에 에이아이로 그려진 그림이 쉽게 넣어지는 상황이니까. 일도 많이 줄어든 걸 체감해요. 책에 들어가는 삽화도 에이아이로 만들어서 내는 책들이 있더라고요. 에이아이에 학습을 시킬 때 그림 작가들에게 저작권료 개념의 뭔가를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법으로 그런 걸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책의 표지는 사실 그 책에 끌리는 큰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책 표지 작업을 할 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의 전반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거요. 그러려면 우선 책을 깊게 읽어야 해요. 그다음에 제 개성이 담긴 그림을 그리는 거고요. 결국 책의 표지는 책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의 작업 방식으로 넘어갔다. “2009년부터 공동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오전 9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아기 낳기 전에는 오후 6시까지 일했어요. 마감이 있으니까 귀가해서도 일을 다 못 끝내면 밤늦게까지나 주말에도 작업을 계속했고요. 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죠. 프리랜서니까 일이 들어오면 일단 다 받았는데, 결국 몸이 좀 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방향성도 있지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도 있으니까 그걸 맞춰가는 게 힘들었어요. 제가 원하는 걸 내려놓고 상대한테 맞추다 보면 저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었죠.”
슬럼프에 빠졌을 때 돌파구가 있었을까. “사실 돌파구도 작업이었어요. 일로 들어오는 그림만 그리니까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일을 좀 줄이고 하루에 한장씩이라도 그리고 싶은 걸 그렸더니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더라고요. 제안을 받고 제 그림과 글을 모아 책을 냈던 것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일까? “‘햇빛 마중’이라는 소설집의 표지 작업이요. 이 책은 처음부터 문진영 소설가와 함께 기획했고, 주체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케이스였어요. 우리끼리 플랫폼에 연재한 후에 소설과 그림을 출판사에 투고했거든요. 작업의 자유로움이 있었고, 하고 싶은 것들이 지켜지는 작업이었죠.”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책방 소식지와 쿠폰 및 책봉투. 이서수 제공


프리랜서의 수입은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그에 대한 고충이 있을 것 같았다. “회사 다니는 친구들의 수입과 비교하면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해요. 그래서 소비를 줄였어요. 사실 초반에는 매절 계약이 많았어요. 싼값에 몇 장의 그림을 외주 주면서, 값을 싸게 매기고 저작권까지 가져갔죠. 그런 계약임에도 작업료가 낮게 책정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걸 인세 계약으로 바꾸려고 출판사와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인세도 차이가 있어요. 글 작가가 7%면, 그림 작가는 3% 정도. 그래도 이젠 저작권에 대해선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저작권은 작가가 갖고 출판 사용권만 주는 것으로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작업료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너무 안 올랐어요.”
그는 그림 작업을 할 때 ‘보는 사람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저는 잘 그린 그림, 못 그린 그림이 없다고 생각해요. 기술적으로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잘 그렸는지보다는 무엇을 담으려고 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이 뭔지 계속 생각하고 있어야죠. 일이 있든 없든.”
박정은씨는 그림을 그리면서 계절책방 ‘낮과밤’을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오래전부터 책방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15년 지기 친구인 문진영 소설가가 저한테 동업을 제안했어요.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는 게 우리의 공통점이었거든요.”
실제로 책방을 운영해보니 박씨는 이 일이 예상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다. 책방을 운영하며 그림 작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계절책방이라는 콘셉트라, 계절마다 주제를 정해 그림 전시와 주제 책, 제철 책을 바꾸는 일부터 좋은 신간이 나오면 살펴보고 들여놓을 책을 결정하고 추천 글을 쓰는 작업까지 일이 산더미였다. 협업 관련한 메일을 확인하고 결정하는 일, 입고할 책과 재고 등을 엑셀 표로 정리하기, 에스엔에스 게시물 올리기, 행사 포스터 만들기, 장비 대여, 소식지 발간 등 그의 입에서는 수많은 일 목록이 쏟아졌다.
그래도 책방을 운영하면서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 “독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게 가장 좋죠. 결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희망을 얻어요. 인터넷으로 쉽게 살 수 있는데 책방에 와서 열권씩 사 가시는 분도 있거든요. 책과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점 같아요.”



책장 하단에 있는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바퀴 달린 좌식 의자를 놓아두었다. 이서수 제공


그림 작업만 하다가 책방지기를 겸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책방을 열면서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출퇴근이 생겼어요. 프리랜서로 살았으니까 루틴 있는 생활을 했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일과 육아가 분리되는 게 좋더라고요. 예전엔 하원을 거의 제가 도맡았다면 지금은 남편이랑 반반씩하고 있거든요. 자영업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죠.”
매일 책방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그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계절마다 큐레이션이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하셨던 분이 기억에 남아요. 책 선정에 품을 많이 들이니까 그런 걸 살펴주시면 보람이 크죠. 가끔 책 표지만 찍고 그냥 가시는 손님도 있긴 해요. 안 알려진 책을 소개하는 일도 사실 노동인데,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끝으로 작은 책방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좋은 책인데 주목받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책들에 기회를 마련해주는 곳이 작은 책방인 것 같아요. 대형 서점은 잘 팔릴 만한 책을 더 밀어주는 경향이 있고 광고비를 주는 책에 매대를 주는 케이스가 있는데 저희는 그런 게 없잖아요. 이 책을 많이 판다고 해서 우리한테 돌아오는 게 없기 때문에 진짜 좋아하는 책을 독자분들께 소개시켜드리고,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는 곳이죠. 손님들이 못 보던 책이 많다고 얘기해주실 때 보람을 많이 느껴요.”
책이 왜 좋은지를 묻자, 그의 눈빛이 일순간 진지해졌다. “저는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을 책에서 많이 배우거든요. 공감되는 문장을 읽었을 때 작가와 통하는 기분도 좋고요.”



이서수 소설가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책방을 떠나기 전에 추천 책을 한권 요청했다. 그는 환경 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내게 ‘향모를 땋으며’를 소개해주었다. 난생처음으로 본 책이었다. 책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 전에 없던 생기와 반짝임이 감돌았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직업을 택한 사람의 얼굴에서 발산된 빛은 한권의 좋은 책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소설가 이서수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 ‘엄마를 절에 버리러’ ‘몸과 고백들’,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 등을 썼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