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 구간)'으로 활력을 잃었던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ESS(에너지저장장치)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AI(인공지능) 산업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ESS 시장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요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이러한 흐름을 감지하고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 전용으로 전환하는 등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어 주목된다.



3월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의 삼성SDI 부스에서 관람객이 원형 배터리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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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이 6월1일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ESS용 LFP배터리 대규모 생산에 돌입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전기차 캐즘' 터널에 막힌 K배터리
ESS는 생산된 전기를 야마토통기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대용량 배터리를 통해 남는 전력을 저장하고,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간대에 다시 공급함으로써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인다. 태양광·풍력처럼 발전량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해왔다.
ESS가 재차 배터리 업계 안팎의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AI 산업의 급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AI 사이다쿨 확산으로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는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력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니만큼, 전력 피크 시간대나 정전 상황에서도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보조할 수 있는 ESS 수요도 덩달아 늘어났다.
특히 북미 ESS 시장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AI 데이터센터 수요 확대 골드몽사이트 에 따라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지역으로, 국내 배터리 업계의 주요 공략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태양광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 내 ESS 설치 규모가 지난해 연간 36.3GWh(기가와트시)에서 2030년 100GWh 이상으로 3배가량으로 커질 전망이다. 1GWh만 하더라도 1000억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 규모다.
전기차 캐즘으로 부진에 빠 바다이야기게임방법 진 국내 배터리 기업에는 미국 ESS 시장이 새로운 희망이 된 상황이다. 국내 주요 배터리 셀 3개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전기차 수요 감소로 전기차용 배터리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만 하더라도 1조2000억원 넘는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9000억원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게다가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 재편 전략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미국 ESS 시장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 매력적인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내년부터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에 따라 금지외국기관(PFE) 규제와 최대 5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시행하며 중국산 배터리와 부품을 단계적으로 배제할 계획이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ESS 전체 수입액 186억6700만 달러(약 27조4400억원) 중 중국산이 131억2400만 달러(약 19조2890억원)로 70.3%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그만큼 미국의 탈(脫)중국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시장 공백을 메울 유력한 대체 공급처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원석 iM증권 연구원은 11월11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미국 ESS 시장에서 점유율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면 ESS 사업 부문이 전기차 배터리 대비 수익성 면에서 더욱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며 "실제 컨테이너 형태의 ESS는 셀 중심으로 공급되는 전기차 배터리보다 가격이 2배가량 높고, 미국 현지 생산 시 AMPC(첨단제조세액공제) 혜택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국내 배터리 3사는 이미 미국 ESS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은 공통으로 신규 공장 건설을 통한 생산능력 확충보다는, 전기차 시장 성장 초기 단계에서 늘려놨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해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아울러 안정성이 높아 ESS용 소재로 선호되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생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배터리 3사, 생산라인 바꾸고 LFP에 집중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월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을 LFP 배터리 생산 기반을 갖춘 ESS 전용 기지로 전환했다. 최근에는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합작한 캐나다 공장 내 일부 자동차 전지 라인을 ESS용으로 바꾸고, 연내 LFP 배터리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ESS 배터리 생산능력을 내년 말까지 30GWh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대규모 수주에도 성공했는데,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7월 테슬라와 연 20GWh 규모 ESS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 납품 물량을 연 30GWh로 50% 늘리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3월에는 미국 델타일렉트로닉스와 4GWh 규모의 주택용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삼성SDI 역시 내년 북미 ESS 시장을 겨냥해 구체적인 생산계획을 내놨다. 이미 지난달 스텔란티스와의 미국 내 합작법인인 '스타플러스 에너지'의 공장 라인을 NCA(삼원계) 기반 ESS 배터리용으로 전환해 가동을 시작한 상태다. 여기에 LFP 배터리 생산라인 전환을 통해 내년 말에는 연간 약 30GWh 규모의 미국 ESS 생산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삼성SDI도 테슬라와의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앞둔 상태다. 논의 중인 계약 규모는 10GWh 수준으로 알려졌다. 추가적인 계약 가능성도 열려있을 것으로 관측되는데, 테슬라가 ESS 시장과 함께 성장한다는 점, 미국 기업의 탈중국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수주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른다.
SK온도 북미 ESS 시장 공략에 방점을 찍고 있으며 성과도 일부 나왔다. SK온은 지난달 미국 플랫아이언에너지개발과 1GWh 규모의 LFP 배터리 ESS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와 함께 6.2GWh 규모 추가 프로젝트에 대한 우선협상권도 확보했다. SK온에 따르면 이 외에도 다수의 고객과 최대 10GWh 규모의 ESS 공급 계약 논의를 진행 중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AI 확산으로 전력과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배터리 셀 업체들의 매출에서 ESS가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전기차 배터리 부문이 여전히 핵심 사업이긴 하지만, ESS가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하면서 업계가 다시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