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강남역 일대의 한 환전소 앞. 손님들이 환전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김수아 기자


“한국 돈이 너무 싸서 처음에 믿기지 않았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역 주변의 한 환전소 앞에서 만난 타일러 와드(Tyler Ward·15)군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인 그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130달러가 조금 넘는 돈을 20만원으로 환전한 와드군은 “환율이 좋아 돈을 번 것 같다”며 웃었다.
인근의 다른 환전소에선 한국인 손님이 원화를 달러로 바꾸고 있었다. 그는 “기대보다 손에 쥐는 달 러가 너무 적어 당황했다”며 “직원이 계산기를 두드려 보여주고서야 인정했다”고 말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7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서울 강남·명동·남대문 등 환전소 밀집 지역엔 달러를 사거나 파는 손님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일 오후 3시 30분 146 5.7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보다 2.4원 올랐다. 장 중 7개월 만에 1470원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만큼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의미다.



지난 11일 서울 명동·남대문 일대의 한 환전소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임희재 기자


환전소 사장들은 외국인 관광객도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하면서 예전만큼 환전 수요가 크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다만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오히려 한국인 손님이 많다고 했다.
서울 명동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박모(30)씨는 “최근 손님 방문이 늘고 달러 거래가 늘었다”며 “대부분 달러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를 팔 러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의 환전소 직원 최모(37)씨도 “교포(재외 동포)들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러 오는데, 많이 받아서 좋아하면서도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좀 안 좋은 것 아니냐고 걱정하곤 한다”고 했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 행진하는 중에 환전소에서 달러를 사들이는 한국인도 있었다. 신논현역 인근 환전 소에서 만난 IT 업계 직장인 김모(36)씨는 달러를 지속해서 사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돈 들어올 때마다 몇 십만원어치씩 달러를 산다”며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를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지속해서 오르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꼽힌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 기준금리를 밑도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든 측면이 있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역 일대의 한 환전소 앞. 가게 앞 전광판에는 각국 화폐 환율이 표시돼 있다. /김수아 기자


또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 대(對)미국 투자 펀드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연간 200억달러라는 한도를 정했지만, 재원 조달 방식 등은 여전히 깜깜이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해졌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미국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0.9%, 내년에는 1.8%다. 미국은 올해 2%, 2026년 2.1%다. 2년 연속 한국이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낮게 예상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통화량 증가율은 한국이 미국보다 높다. 현금과 손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 상품을 합친 광의통화(M2) 증가율은 올해 들어 전년 동기 대비 미국은 평균 4%씩 증가했으나, 한국은 6.9%에 달한다.
환전소 입장에선 달러를 파는 손님에 비해 사는 손님이 줄어 영업에 큰 도움은 안 되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환율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워 걱정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명동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김모(58)씨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끝나면 원·달러 환율이 내려갈 줄 알았는데 또 오르고 있다”며 “이 일 나름 오래 했는데, 요새 환율을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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