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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망에 인사평가 결과가 발표되는 날, DY기획 사무실이 아침부터 어수선하다. A등급을 받고 기뻐하는 지예은 사원에게 백현진 부장이 특유의 냉소적인 말투로 찬물을 끼얹는다. “’A’는 ‘Average Under’, 그러니까 평균 이하라는 거예요.” 반전은 계속된다. S는 ‘쏘쏘(So So·그저 그럼)’, F는 ‘판타스틱(Fantastic·매우 훌륭)’의 약자였다. F등급의 주인공 차정원 사원이 주임 대우로 승진하자 직원들은 떨떠름히 박수를 친다.
지난달 9일 태영건설 주식
시즌2로 돌아온 쿠팡플레이 시리즈 ‘직장인들2’의 한 장면. 마케팅 회사 DY기획을 배경으로 한 극사실주의 오피스 코미디로, 실제 회사에서 겪을 법한 상황을 코믹하게 비틀어 공감과 웃음을 얻고 있다. 9명의 고정 출연진이 여러 직급으로 나뉜 동명의 부캐릭터를 연기하고, 매회 게스트가 마케팅 의뢰 고객이나 일일 인턴, 사내 강연자 등으로 출연한다.
오리지날 양귀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수많은 ‘쇼츠’와 ‘짤’을 양산하며 입소문을 탄 결과, '직장인들'은 쿠팡플레이 인기작 부동의 1위다. 5화는 공개 첫 주 대비 시청량이 무려 881% 급등하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민PD와 출연진에게 직장인들의 흥행 비결을 물었다.


코위버 주식

쿠팡플레이 '직장인들2' 5화에서 백현진 부장이 익명 게시판에 비방 글을 쓴 부하 직원을 색출하고 있는 모습. 쿠팡플레이 제공


'직장인들'은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SNL의 ‘MZ오피스’나 웹 드라마 ‘좋좋소’에 비해 출연진들의 애드리브 비율이 90%를 넘는다신 천지 게임
.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점검한다’는 간략한 상황이 주어지면 “발냄새 제거 스프레이는 누가 산 거죠?” “김원훈 주임은 법카로 모발 이식했어요” 등 출연진의 즉흥 멘트들이 이어진다. 사전 합의는 금물이다. 김 부장 역의 김민교 배우는 “완전히 즉흥적인 재즈 합주 같은 작품”이라며 “박자만 놓고 누군가 시작하면 맞춰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한세희
”고 말했다.
이번 시즌 신스틸러(한 장면만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배우)는 단연 새로 합류한 백현진 부장이다. ‘현실 상사’ 그 자체인 날카로운 눈빛과 깐깐한 말투로 직장인 시청자의 월요병 유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촬영 중 끊임없이 펼쳐지는 돌발 상황에 베테랑 종합 예술인인 그도 ‘웃음 참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백현진은 “원래는 웃음기를 싹 걷어낼 생각이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본캐’를 섞어서 하고 있다”면서 “배우로서 깨고 싶었던 악당 이미지가 많이 흐트러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쿠팡플레이 '직장인들'에서 김원훈 주임이 특유의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쿠팡플레이 제공


‘낀 세대 주임’ 김원훈은 극의 웃음을 책임진다. 억울한 표정으로 선 넘는 질문을 던지며 게스트를 당황시키는 게 그의 주특기. 농담을 잘 받아주지 않는 정성일 배우에게 “교통사고 나면 대인 대물 다 접수하고 렌트도 20일씩 하지 않냐”고 하거나, 이세돌 바둑 사범에게 “부인이 혹시 AI는 아니죠?”라고 묻는 식이다. 김원훈은 “촬영이 끝나고 게스트와 나누는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는 거의 ‘죄송합니다’”라며 “본체는 무례한 말을 잘 못한다. 집에 가면 ‘오늘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하며 엉엉 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대기업 회장님이나 최민식 배우처럼 범접하기 어려운 분에게 대중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시원하게 던져보고 싶다”고 했다.
불협화음이 나도 괜찮다. 모든 출연자가 최전방 공격수가 될 필요도 없다. 회사란 원래 그런 거니까. 신동엽 대표와 김민교 부장은 조용히 판을 깔고, 톤을 조절하는 미드필더·수비수 역할로 극의 현실감과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연출자가 가장 신경 쓰는 점이기도 하다. 김 PD는 “웃긴 부분을 덜어내더라도 어떻게든 ‘직장인 모먼트’를 부각시키고자 한다”며 “시청자들이 각자 현실의 자신과 비슷한 직급의 캐릭터에게 감정 이입을 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