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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판소리 속 주인공 심청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효녀의 대명사로 통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립창극단이 새롭게 재해석한 판소리극 '심청'에서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요. 

현대판 심청이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어떤 질문을 남겼는지 들여다봅니다. 

먼저 영상 보고 오시겠습니다. 

[VCR]

국립창극단 판소리극 '심청'
원작 인물·설정 파격 재해석

'효녀의 대명사' 심청
희생 강요당하는 검증완료릴게임
사회적 약자로

"공양미 삼백 석을 지급하여 주옵소서"

의상·무대 현대화…생중계 카메라 활용
판소리 대목은 그대로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바치는 진혼가"
심청이 남긴 질문은?

BIG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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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아 앵커
판소리극 심청이 남긴 질문들에 관해 취재기자와 좀 더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효녀 심청이를 재해석한 이 작품이 예술계에서초보주식강좌
는 큰 화제가 됐다고요. 

어떤 점이 가장 다른 겁니까?

황대훈 기자
이번에 공연한 '심청'은 국립창극단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공동 제작한 작품입니다. 

지난달에 전주 개막 공연 무대에서 첫 선을 보였고, 이번 달 초바다이야기PC버전
에 국립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마쳤습니다. 

창극은 소리꾼 1명이 부르는 판소리와는 다르게 다양한 배우들이 나와서 함께 소리를 하는 형태의 공연인데요. 

여기에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인 요나 김이 극본과 연출을 맡아서 판소리 심청가를 새로운 창극 작품으로 바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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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대목은 그대로 가져와서 부르는데 설정과 인물을 다 바꿔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었는데요. 

가장 큰 변화가 효녀 심청이라는 이미지를 없앤 것입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당하는 피해자로 그려졌고요. 

주변 인물들도 그런 심청이를 도와주기보다는 방치하거나 때로는 더 큰 고통을 가하는 악역으로 묘사됩니다. 

심청이 캐릭터가 원작에서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 밥을 빌러 다니잖아요. 

그 과정에서 일종의 아동 학대, 성 착취를 당하는 장면들도 나옵니다.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지지 않더라도 이미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통찰입니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용궁에 가고 연꽃으로 부활해서 왕에게 시집간다는 동화 같은 설정들은 전부 삭제됐고요.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은 유명한 그리스 비극의 한 장면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그려졌습니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에서는 주인공이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못 이겨서 자기 눈을 멀게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로 눈을 감고 살던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서야 심청이가 희생당하는 장면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으로 재해석 됐습니다. 

서현아 앵커
판소리 대목만 남기고 인물과 설정을 모두 바꾼 셈인데, 연출가는 어떤 의도를 담은 겁니까?

황대훈 기자
연출가 요나 김은 특히 심청이도 한 명의 인간인데, 그 심청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이 작품을 심청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심청이가 희생을 강요받은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도 썼고요,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진혼가라는 말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나 성범죄 피해자를 연상시키는 장면들도 많습니다. 

작품이 시작하기 전에도 영상이 하나 나오는데요. 

심청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다양한 시민들에게 묻는 과정을 담은 인터뷰 영상인데, 거기서 시민들 대부분이 효녀 아닙니까? 

착한 아이 아닌가요? 

이렇게 답변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심청을 바라보는 관점은 좋은 일을 한 착한 소녀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어서 얼굴을 하얗게 칠한 소녀들 수십명이 막 웃으면서 무대 앞으로 뛰어들어 오거든요. 

그러면 처음에 관객들이 그 소녀들에게 호응해서 막 같이 웃고 박수를 치다가 어느 순간 박수를 딱 멈추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이 모두 앞으로 인당수에 빠져죽을 수많은 착한 심청이들이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이 수많은 소녀들이 손에 연꽃을 들고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소녀들에게 심청이처럼 희생하라고 가르치실 겁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읽힙니다. 

심청이의 희생을 사회적 억압의 결과로 해석한 대목도 눈에 띕니다. 

원작에서 심봉사가 눈을 뜰 때 다른 시각장애인들도 전부 시력을 함께 되찾는 장면이 있거든요. 

이번 작품에서는 이 장면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눈을 감고 눈에 가짜 눈알을 붙이고 걸어다닙니다. 

이른바 '눈뜬 장님'이라는 말을 그대로 시각화 한 건데요. 

심청이가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결국 인신공양 제물로 끌려가도록 방치한 심청이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전부 눈이 먼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여성 문제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차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장시키는 대목입니다. 

서현아 앵커
작품을 본 관객들 사이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옵니까?

황대훈 기자
전반적으로 고전 판소리의 매력은 유지하면서도 동시대 관객들에게 와닿을 수 있는 작품이 됐다는 평가인데요, 전문가 발언 들어보시겠습니다. 

인터뷰: 김희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고전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감동을 주거나 혹은 충격을 주거나 혹은 우리를 각성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놀라웠고 그 점에서 저는 이 작품이 우리 시대에 고전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당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반전 동화, 비극 동화처럼 고전이나 동화의 결말을 비트는 작품들이 익숙하기 때문에 신선하게 느껴졌다는 반응이 많고, 중장년 여성 관객층에서는 상당히 감정이입을 해서 본인의 인생 같았다, 혹은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 같았다, 이런 반응도 나옵니다. 

평단에서도 유럽 오페라 못지 않은 대작이 나왔다는 평가부터 틀에 박힌 심청이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한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평가가 많고요.

비판도 적지 않은데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창극치고는 무대에 상당히 충격적인 연출이 많은데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도 있었다고 하고요. 

심청이를 약자고 희생자로 그리는 방식이 오히려 여성 캐릭터를 주체적이지 못한 존재로 그리는 것 아니냐, 혹은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을 예외없이 악인으로만 묘사할 필요가 있었냐 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만 심청이라는 작품을 놓고 이렇게 다양한 감상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또 다른 성과라고 짚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인터뷰: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
"이런 호불호가 팽팽하게 있는 현상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운 문화 현상이고 세대 간의 시선이 딱 (고정된) 층이 되어 있었는데
그걸 한 통에 넣어서 막 흔들어 보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서현아 앵커
많은 논쟁의 촉매가 된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이 심청을 재해석한 첫 시도입니까?

황대훈 기자
창극이라는 공연 분야에서는 처음인데요. 

사실 심청이의 효녀 캐릭터를 뒤집는 해석을 내놓은 문학 작품은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소설 광장으로 유명한 최인훈 작가가 1970년대에 쓴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서도 심청이가 효녀가 아니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서 고통을 겪는 존재로 묘사되고요. 

2013년에도 황석영 작가가 장편소설 '심청, 연꽃의 길'에서 심청이를 단순한 효녀로 그리기보다 악착같이 삶을 살아가는 역동적인 캐릭터로 만들었습니다.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도 사실 고전 작품이나 전래 동화는 시대상이 오늘날과 많이 달라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도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기보다 토론을 거치면 좋은데요. 

교사들이 시중에 많이 내놓고 있는 고전이나 동화 관련 책자들을 보면 현대적 관점에서 인물의 행동이나 생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이 꼭 들어 있습니다. 

이번 판소리극 '심청'은 우리 사회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돼 왔던 심청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질문들이 가장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판소리 심청가와 만났을 때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국립창극단이 남아 있는 판소리 네 마당에 대해서는 또 어떤 해석을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서현아 앵커
고전은 현재의 질문 속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새롭게 해석된 심청이 던진 질문이 의미 있는 토론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